유령이 배회하고 있습니다. ‘경기침체’라는 이름의 유령이... 경기침체는 정말 피할 수 없는 걸까요? 모두가 경기침체를 경고하는 상황에서 글로벌 투자사 록펠러 인터내셔널의 루치르 샤르마 회장이 반대의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나섰습니다. 어떤 배경일까요? 경기침체를 피할 수 있는 시나리오가 가능할까요?
최근 월가 전문가들이나 금융기관 중에는 내년 미국 경기침체의 가능성이 100%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조금 더 현실적인 수치로는 “경기침체 확률이 90%다”, “80%다” 다양하지만 대체로 경기침체를 피할 수 없을 거라는 데 의견이 모이고 있는 듯 보입니다. 그런데 모두가 경기침체를 말하니 ‘정말 그럴까?’ 한 번 뒤집어 반대의 가능성을 생각해 보는 것도 의미 있어 보입니다.
모두가 경기침체를 가리키니... 어쩌면 안 올 수도?
7일 자(현지 시간) <파이낸셜타임스>(Financial Times)에 실린 루치를 샤르마 회장의 기고문은 “이코노미스트들이 다들 경기침체를 예상하고 있다... 그러니 어쩌면 안 올 지도”(Economists see recession coming, so maybe it’s not)라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을 달았습니다. 글 전체의 핵심을 담은 부제목은 이렇습니다. “시장은 경기침체를 예측하는 데 있어 더 좋은 기록을 갖고 있다 - 하지만 때때로 필연적인 일이 결코 일어나지 않기도 한다.”
샤르마 회장은 경제학자나 이코노미스트들이 종종 나무만 보고 숲이라는 큰 그림은 놓치는 경향이 있음을 지적하는 것으로 글을 시작합니다. 국면 국면의 작은 전개 과정에만 몰두하다 보니 전체 이야기에서 더 큰 흐름의 방향 전환이 이뤄져도 그것을 놓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1970년대 이래로 지금까지 이코노미스트들의 견해가 모인 컨센서스가 단 한 차례도 경기침체를 제대로 예고하지 못했다는 것(their consensus view had not forecast a single US recession since records began in 1970 — until now)입니다.
그런데도 이번에는 사상 처음으로 경제학자들이 한 데 뭉쳐 내년도 미국에서의 경기침체를 예상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것도 굉장히 높은 확률로 그럴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과거의 예측 성공률 기록을 보면, 경기침체에 대한 이번 컨센서스가 실은 맞지 않을 가능성은 없는 것인지 의문을 품어 볼 가치가 있습니다.(Given their record, it’s worth asking whether the consensus is, in fact, unlikely.)
루치를 샤르마 회장은 인플레이션이 40년 만의 최고 수준에 있고 중앙은행이 공격적으로 금리 인상을 가져가고 있는 상황에서 “경기침체가 실제로 불가피해 보이기는 한다”고 스스로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필연적으로 보이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으며, 예상치 못한 일들이 수시로 발생한다”(the inevitable never happens and the unexpected constantly occurs)는 존 메이너드 케인즈의 경고를 인용하며 상황을 한 번 뒤집어 볼 것을 제안합니다.
경기침체를 피할 시나리오... 모든 조건이 따라준다면
샤르마 회장이 케인즈의 말을 인용했듯 일견 필연적으로 보이는 경기침체가 수개월 내에 발생하지 않으려면 어떤 예상치 못한 일들이 일어나야 하는 걸까요? 경기침체를 피할 시나리오는 인플레이션의 급격한 하락에서 출발합니다.( The case for the unexpected scenario - no recession in the coming months - would start with inflation declining rapidly.)
물가 지수가 급격히 떨어진다면 연준은 추가적인 긴축을 멈추게 될 것입니다. 인플레이션이 전에 가정한 것처럼 ‘일시적’(transitory)인 것이 아니라 더 오랫동안 더 높게 머물 것이라는 데 합의가 이루어졌을 때 공급망 병목 현상의 완화가 예상보다 빠르게 인플레이션을 낮출 수 있게 됩니다. 화물 운송 가격의 급락, 항구에서의 연착 시간 단축, 연준의 ‘공급망 압박 지수’ 급락 등이 징후가 될 수 있습니다. 현재는 중국 경제도 어려움에 빠져 있어 더딘 물가 상승을 전 세계로 수출하고 있습니다. 중고차에서 에너지에 이르기까지 모든 가격이 하락하면서 상품 인플레이션이 둔화하고 있습니다.
물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비정상적으로 견조한 노동 시장이 임금을 빠르게 상승시키고 있어 연준으로서는 폴 볼커 전 의장 치하의 1980년대 초반 때처럼 긴축 정책을 밀어붙일 것이라 가정합니다. 경기침체를 유도해서라도 임금-물가 상승 소용돌이(inflationary wage-price spiral)를 피하고자 금리 인상을 공격적으로 계속하는 것 말입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미국 경제는 여전히 경기침체의 영역에 들어서기에는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3분기 2.6% 성장으로 상반기 부진을 털어냈고, 물가가 오른 만큼 가처분 소득도 늘어나 소비자 지출을 견조하게 떠받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민간 부문의 지출, 기업 자본 지출, 실업률 등 거의 모든 지표들이 경기침체 직전에 볼 수 있는 수준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노동 시장이나 주택 시장 관련 지표는 이제 서서히 금리 인상의 효과로 위축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인플레이션이 1980년대처럼 두 자릿수까지 치솟아 고공행진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고점을 찍고 내려오게 된다면 연준으로서도 금리를 인상해야 할 압박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경기침체를 피하기 위한 시나리오에 힘을 더해 줄 변수에는 경제 외적인 요소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 위기를 맞은 유럽은 현재 추운 겨울을 어떻게 날 지 걱정이 큰데 올겨울이 예년보다 따뜻한 겨울이 된다거나 종전-휴전으로 평화가 찾아온다거나 하는 일이 우리에게는 예상치 못한 기쁨을 가져다주는 ‘파랑새’(bluebird)가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모든 조건들이 다 맞아떨어져 물가도 잡고 경기침체에도 빠지지 않는 최상의 결과를 만들어낼 시나리오가 현실화하는 것은 결코 가능성이 높은 일은 아닙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래로 미국 증시는 경기침체 앞이면 전형적으로 최소 20%의 지수 하락을 보이곤 했습니다. 또, 경기침체 몇 달 전에는 미 국채 장단기 금리차 역전 현상을 보인 것과 같은 전조 현상도 있습니다. 이런 시장의 신호를 보면 지금도 경기침체에 대한 경고를 외면할 수 없는 상황이며, 그렇지 않을 시나리오를 바란다는 건 그야말로 마법과도 같은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치르 샤르마 회장은 “이코노미스트들의 컨센서스가 너무나 일치한 방향으로 강하다면, 아무래도 케인스의 그 인용구를 떨쳐버리기가 어렵다”고 말합니다. 더구나 그 컨센서스가 과거 경기침체 예측력에 관한 한 정확도가 그리 높지 않았던 이코노미스트들의 컨센서스라고 한다면 말입니다. 샤르마 회장은 다음과 같이 글을 맺습니다. “예상치 못한 일은 이제 시장과 경제에서는 하나의 상수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경기침체가 필연이 아닐 가능성을 적어도 마음속에 품어야 하는 것이다.”(The unexpected is a constant in markets and the economy, which suggests we should at least entertain the possibility that a recession is not inevitable.)
과연 우리는 파랑새를 볼 수 있을까요? 그러기엔 지금은 경기침체 불가피론자들 투성이인 것 같긴 합니다. 하지만 정말 모를 일이죠. 케인즈의 말처럼 “필연적으로 보이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고, 예기치 못한 일들은 늘 일어나게 마련”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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